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레리 사블린 (문단 편집) == 생애 == 1939년, [[대조국전쟁]]이 벌어지기 3년전에 [[레닌그라드]]의 해군 장교 가문에서 태어난 사블린은 어린 시절을 [[레닌그라드 공방전|살벌하고 험악한 전시의 레닌그라드의 시가지 폐허]]에서 부모님의 보호 아래에서 생활하며 살아남았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 자기 스스로의 미래 진로를 가업[*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해군 장교이자 해군 복무자였었다.]에 따라 해군 장교가 되기로 결정한 사블린은 1955년, 16살의 나이에 프룬제 해군 사관학교에 사관생도 자격으로 입학하여, [[소련 해군|해군]] 소속 [[정치장교]]가 되기 위해 노력하였다. [[파일:사관생도 시절의 발레리 사블린.jpg]] (사관생도 시절의 사진.) 1959년, 20살의 나이에 연인 관계인 니나와 결혼하여 가족을 꾸렸고, 슬하에 아들인 미하일을 두게 되었다. 사블린은 어린 학생일 때부터 원칙주의자이자 모범적인 우등생이였고, 선한 성품의 인격자였으며, 항상 주변의 부모님과 친구, 동료들로부터 '유난히 고매한 인품을 가진 인간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그는 자신이 생각하고 말하는 바를 행동으로 실천하길 원하는 사람이였다. 이에 흐루쇼프 시대인 1962년에 사블린은 23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노멘클라투라|위선자들과 부패로 가득한 공산당]]을 [[숙청|제거]]해야합니다."라며 편지를 '직접' '당의 제1서기'인 [[니키타 흐루쇼프]]에게 보냈었다. 당시에 이런 위험한 내용이 담긴 편지에 대해 제1서기인 [[니키타 흐루쇼프]]는 이에 대해 벙찌긴했으나 파문을 일으킬만한 편지를 보낸 사블린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이에 대한 처벌을 내리지는 않는 것으로 조용히 마무리 되었다. 그 정도의 강력한 용기와 담력, 공산주의에 대한 믿음과 신념을 가졌던 사블린은 당 최고지도자에게 보낸 편지와 그 내용이 공산당과 정부 기관에 검열 과정에서 드러나자 그가 소속된 프룬제 군사학교의 해군 사관학교로부터 강한 책문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파문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장교가 될 자질이 있다는 최종 재평가를 받고, 1960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우등생으로서 졸업이 허가되어 발트 함대에 소속된 작은 기지 중 한 곳에 자신의 목적에 가까워지게 될 계기, 즉 자대배치를 명받았다. [[파일:사관생도 사열 중의 발레리 사블린.jpg]] (발레리 사블린의 사관생도 사열식 중의 사진, 사진 속 두번째 사관생도가 발레리 사블린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사블린은 자신의 목표를 실현하고자 그의 오래된 목표, 새로운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하기 위해서 정치장교로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정훈교육|당 정치사업]] 활동 중 해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훈교육|당 정치사업]]들을 많이 거치면서 그가 진심으로 믿었던 [[공산주의]]에 더더욱 경도되었다. 사블린이 임관한 시기는 [[흐루쇼프]]~[[브레즈네프]]를 거치며 소련 사회 전반이 보수화되고 경직되어 갔기 때문에 소련 정부와 전연방공산당은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개념을 점진적으로 도입하고 있을 때였다. 이로 인하여 발생한 사회적 불평등과 각종 부조리, 그러한 악영향들의 실체화인 '[[노멘클라투라]]들을 지켜보면서 '''소련 체제는 [[관료제#s-3.2|혁명가들이 아닌 관료들이 지배하는 체제]]가 되었으며, 이는 [[카를 마르크스]], [[블라디미르 레닌]]의 [[공산주의|이상]]에 어긋났으니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사블린은 다시 여기게 되었다. [[파일:야간 당직 근무를 서는 발레리 사블린.jpg]] (그의 당직 근무 중 촬영된 사진으로 보여진다.) 1969년, 30세에 그는 구축함 함장 자리를 제의 받았으나, 그러한 출세 가도에 대한 보장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급 사상 교육 과정을 위해 레닌정치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그는 더 고급이라 여겨지던 교육기관, 레닌정치학교 안에서도 배우거나 볼 수 있는 있는 지식이나 서적들이 당과 정부에 의해 검열되어 제한 및 한정되어 있음을 깨닫고, 결국 소련은 점진적 변화보다는 다시 [[10월 혁명]]과 같은 강력한 사회적 파장으로 바뀌어야한다는 생각을 단단히 굳히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